관선과 민선 파주 군수를 거쳐 민선 파주시장을 연임하면서 파주·문산 지역의 상습 침수 문제를 해결한 송달용 전 시장이 지난 12월 3일 오전 9시22분께 서울 연희동 동신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나게 된 송달용 전 시장은 진정한 파주인이다. 그래서 올해 구순을 맞아 펴낸 회고록 책 제목도 '나는 坡州人'이었다.
올해 세상을 떠나실 것을 예견이라도 했듯 파주시 격변기 파주발전의 틀을 다진 각각의 숨은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작고하기 5개월 전에 펴내고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 공무원들과 출판회를 갖은 것 역시, 회자정리의 참모습을 보인 꼴이 됐다.
파주발전의 뿌리와 숨결이 들어있는 교과서 같은 '나는 坡州人' 출판기념회는 지난 6월 10일 금촌동 센트리움웨딩홀에서는 차주철 행정동우회 회장을 비롯해 이기영 읍면동장협의회 회장, 박세영 노인회장, 박재홍 파주문화원장 등 100여 명의 전 공직자가 참석한 가운데 송달용 초대 시장의 출판기념회를 갖고 가졌다.
오늘날 파주시가 발전하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송달용 시장은 회고록에서 시장 취임 초기부터 '시민이 행복한 파주'를 설계하고 실천한 갖가지 굵직굵직한 사업과 그 속에 숨은 뒷이야기를 담아 진정한 파주인으로서 얼마나 파주시에 대해 애착을 갖고 달려왔는지를 느끼게 하고 있다.
회고록에 기록 내용들을 살펴보면 '숨 막혔던 통일로 정비사업', '60년 만에 구제역, 파주에 발생하다', '농민을 위한 하나로클럽 얼마나 도움이 되었나?', '초평도 개발 대신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20만 평 조성하다', '장단콩축제 농가소득에 효자되다', 'LG필립스 파주공장이 세워지기까지', '비좁은 파주시청 부지 어떻게 넓혔나?', '밥값은 직원에게 부담시키지 마라', '파주시정을 떠나면서-퇴임사', '정치적 압력에 행정의 허리가 휜다' 등 역동적인 파주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송달용 시장의 아들 송영규씨는 아버님이 파주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열정을 보면서 파주는 아버님의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 정도로 송달용 시장의 파주 사랑은 남달랐다.
가난한 파주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임시직원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아무런 학연, 지연도 없이 45년 동안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보든 안보든 진정성 있게 노력한 결과라며 사심 없이 주민들과 지역발전을 위한다면 어려운 일도 잘된다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아버님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출판기념식에서 송달용 시장은 "45년 공직생활 중 17년을 고향 파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나의 신념과 소신대로 도시다운 도시와 삶의 보람을 파주에서 느낄 수 있는 기틀을 조금이나마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신 없는 큰 영광이고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가평군수, 관선 고양군수 2번, 초대 고양시장, 관선 파주군수 2번, 초대 민선 파주시장의 파란만장한 공직생활을 잘 마쳐 2002년 퇴임 이후 벌써 20여 년이 흘렀지만 나의 확고한 철학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내가 걸어온 작은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향 사랑을 푸른 소나무와 같이 변함없이 영원히 사랑한다는 뜻의 송향회(松響會) 회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당시 송달용 시장은 송향회에서 파주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적비를 세우기로 하고 건립비용을 마련했지만 이보다는 17년 간 같이 일했던 파주시 공직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협조, 파주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룩한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는 파주발전의 이면사(裏面史)를 전하는 것이 좋겠다며 회고록을 펴내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냐고 하여 회고록을 발행하게 된 것. 이렇게 해서 파주시 70년대 80년대 90년대 파주발전의 근간이 통일로가 만들어지고 새마을 운동, LG디스플레이, 운정신도시, 1997년, 1998년 1999년 수해와 이로 인한 방제시스템 구축 등 17년 간 파주발전에 전력해온 송달용 시장의 파주시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회고록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송달용 시장은 책을 펴내는 것에 대해 "역사는 구전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의 공직생활을 남긴다는 것은 나만의 기록이 아니라 공직생활 45년 중에 있었던 일과 특히, 17년 동안 같이 일했던 파주시 공직자의 피나는 노력과 협조, 그리고 파주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룩한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 파주발전의 이면사를 후세에게 전하고자 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름지기 공직자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송달용 시장의 공직생활 역사는 많은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임시직에서 시작해 묵묵히 소처럼 걸어온 우보(牛步) 송달용 시장은 타계하셨지만 영원한 파주시장으로 파주민의 마음속에 우뚝 서 있을 것으로 사람들은 말한다.
송달용 전 시장은 1934년 경기도 파주군 아동면 야동리(현 파주시 야동동)에서 태어났다. 파주금촌초등학교, 파주문산중학교, 파주문산종합고등학교(현 문산제일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졸업 후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경기도청 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관선 가평군수. 고양군수, 파주군수, 고양시장 등을 지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기도 파주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시 승격으로 군수에서 시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민주자유당의 후신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파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고기석기자 koks7@daum.net